[천자칼럼] 무자원 산유국…SK의 집념

입력 2023-09-26 18:04   수정 2023-09-27 00:05

“석유개발은 한두 번 실패했다고 중단하면 아무 성과가 없습니다. 실패에 관해 거론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공이 1980년대 초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유전 개발에 연거푸 실패하자 최종현 당시 선경 회장이 임직원에게 한 말이다. 선경은 앞서 미국 걸프사로부터 대한석유공사 지분 50%를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한 뒤 유전 개발에 뛰어들었다. 실패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최 회장의 독려에 유공은 지분을 투자한 예멘의 마리브 광구에서 1984년 첫 성과를 거뒀다. 10년의 준비와 노력이 작은 결실을 봤다.

최 회장은 섬유 중심의 사업을 정유·석유화학 등으로 확장하면서 직접 개발해 석유를 생산하는 ‘무자원 산유국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는 1973년 형인 최종건 창업주로부터 선경직물 등의 경영권을 승계한 직후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2년 뒤 신년사에선 “우리 섬유산업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석유화학공업 진출이 불가피하고, 더 나아가 석유정제사업까지 성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이토추상사와 합작해 정유공장을 짓기로 하고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원유 공급까지 약속받았지만, 1차 석유파동으로 무산됐다. 이어 1979년 2차 석유파동까지 두 차례 위기는 해외 유전 개발에 대한 최 회장의 집념에 불을 붙였다. 막대한 투자비에도 성공률은 5%에 불과한 탓에 주변의 반대가 컸다. 예상대로 실패의 연속이었다. 1989년엔 미얀마에서 처음으로 독자 개발권을 획득한 뒤 4년간 5600만달러를 투자해 탐사에 나섰다가 빈손으로 철수하기도 했다.

석유개발사업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으로 경영권이 승계된 이후 큰 성과를 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지분을 투자한 8개국 10개 광구와 4개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의 생산량은 하루 5만2000배럴(석유 환산 기준)에 달한다. 최근엔 남중국해 광구에서도 탐사 시작 8년 만에 원유 생산에 성공했다. SK가 탐사부터 개발, 생산까지 맡은 첫 사례여서 의미가 크다. 고유가에 핵심 광물 무기화까지 확산하는 시대, 일찌감치 해외 자원개발에 투자해 무자원 산유국의 토대를 닦은 기업인들의 꿈과 의지에 새삼 머리가 숙어진다.

류시훈 논설위원 bad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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